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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절반은 후속투자 못 받아…결국 고금리 장사 먹잇감

  • [고금리 장사 먹잇감 된 K-벤처]②
  • 벤처기업 후속투자 비중 49%…미국은 90% 넘어
  • 자금 구할 곳 없어 결국 증권사 고금리 장사 먹잇감
  • 3곳 가운데 1곳 '죽음의 계곡'…5년 생존율 29%
  • 美 실리콘밸리은행 그룹 사업모델 도입해야
  • "독립형 워런트 발행 등 금융당국 뒷받침 필요"
  • 등록 2022-08-11 오전 3:00:00
  • 수정 2022-08-11 오전 7:12:05

이 기사는 2022년 08월 11일 03시 0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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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정부가 한국 벤처기업 생태계 질적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초기 투자를 받았던 벤처기업의 후속투자 비중은 절반도 안 되고, 한국 벤처기업 중 상당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금을 구할 곳이 없는 일부 벤처기업들이 증권사들의 고금리 장사 먹잇감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절반도 안 되는 후속투자… 5년 생존율 29%

10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한국 벤처기업이 초기투자를 받은 이후 후속투자를 받는 비중은 작년 말 기준 49.0%로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41.1%와 비교하면 8%포인트 가까이 증가했으나 2017년 46.1%, 2018년 47.2%, 2019년 46.2% 등의 비중을 고려하면 크게 늘지는 않았다.

그나마 최근 대형 벤처캐피탈의 후속투자가 늘면서 한국 벤처기업 후속투자 규모는 2017년 1조2616억원에서 2021년 5조4646억원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 후속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한국의 스케일업 규모는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미국 벤처기업 후속투자 비중과 비교하면 절반도 못 미친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미국의 벤처캐피탈 후속 투자한 비중은 2020년 92%에 달한다. 2016년부터 꾸준히 90%를 유지하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벤처기업이 기술 개발에 성공해 고객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매출 성장을 실현하려면 중기와 후기 단계에서 대규모 스케일업 투자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경우 벤처대출, 스케일업 전용펀드, 공모형 비상장기업 투자기구 등 민간 영역의 스케일업 자금공급 수단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 벤처기업들이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은 29%로 OECD 국가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인 43%에 비해 크게 저조하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질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며 “특히 정부의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고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탈 자금조달 비중은 적다. 결국 초기 투자가 후속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벤처기업들이 고금리 대출 상품을 찾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SVB 사업모델 도입해야…“생애주기별 자금공급”

전문가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그룹의 사업모델을 국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2021년 말 SVB 그룹의 자산총계는 2115억달러로 FRB로부터 규율을 받는 미국 은행 소유 금융그룹 중에서 13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SVB 그룹 자산총계는 2001년 말 42억달러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이후 미국 벤처기업 생태계의 성장과 더불어 연평균(CAGR) 2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SVB 그룹은 1983년 설립 이후 2021년 말까지 3만개 이상의 벤처기업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자금을 공급했으며 미국 전체 테크와 바이오·헬스케어 섹터 벤처기업의 50%를 SVB 그룹의 고객으로 두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우버’, ‘트위터’ 등 성공한 스타트업도 SVB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SVB 그룹의 성장은 실리콘밸리 지역 내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탈, 사모펀드 등과 지분투자와 대출 등의 형태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이들로부터 지분투자를 받은 기업에 한해 벤처대출을 제공하는 등 벤처 생태계와 동반자적 관계 형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SVB 그룹은 또 벤처기업을 매출 규모 등에 따라 구별해 초기 기업에는 보육과 시딩 투자, 중기·후기 기업에게는 후속 지분투자와 벤처대출을 제공하는 등 벤처기업 생애주기별 맞춤형 자금공급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한 증권사 신기술금융투자 관계자는 “SVB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적재적소에 제공하는 동반자형 투자은행”이라며 “무엇보다 SVB가 벤처기업에 대출을 제공하는 대신 워런트를 취득하는 점이 국내와는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SVB 그룹은 벤처기업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대신 워런트를 취득하고, 이를 조건으로 대출 금리를 낮춰 제공한다. 워런트는 적극적인 지분투자의 성격이 아니므로 보통주와 우선주를 구분하지 않고 취득하며, 통상 대출액의 4~5%를 수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SVB 그룹의 자회사인 SVB 은행, SVB 캐피탈 등은 설립 이래 벤처기업 후속 지분투자를 841건 수행했는데 이 가운데 38.6%인 325개 벤처기업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성공적으로 회수를 실현했다.

이에 2021년 말 SVB 그룹이 벤처기업 워런트와 지분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은 각각 5억6000만달러, 5억2000만달러로 이는 전체 순이익의 40%를 차지한다. 2014년 말 SVB 그룹의 워런트·지분투자 수익이 1억2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21년 말 수익은 10억8100만달러로 약 10배 증가하며 SVB 그룹의 전체 수익을 견인하고 있다.

이효섭 실장은 “SVB 그룹은 짧은 역사에도 글로벌 대형 금융지주회사들과 견줄만한 성과를 실현하고 있다”며 “SVB 그룹의 사업모델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국내 도입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VB식 벤처대출 나서지만…한계 여전”

국내에서도 SVB식 사업모델과 유사한 보증연계투자, 투자옵션부보증 등 벤처대출에 나서고는 있다.

작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SVB식 투자·융자 결합금융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투자조건부융자 제도를 도입하고 투자옵션부보증 제도를 확대하기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이 수행한 보증연계투자 규모는 두 기관 합쳐 연간 약 100개 기업에 대해 700억~900억원에 불과하며 2020년 기준으로는 양측 모두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보증연계투자 규모는 업체당 약 5억~10억원 내외로, 글로벌 벤처대출의 평균금액(약 300억~500억원 내외)과 비교하면 규모도 작다.

이 외에도 IBK기업은행이 SVB식 사업모델을 구축하려 한다. 실제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녀오고 SVB식의 벤처대출을 시범 도입해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금융회사들이 SVB식 사업모델을 활용하는데 제약이 많다고 보고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정책금융 의존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조달 비용이 큰 SVB식 벤처대출이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경우 정책자금 지원이 많아 벤처기업에 대한 SVB식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시중은행은 벤처기업 리스크를 안으면서까지 대출을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독립형 워런트가 금지되어 있어 벤처대출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의 참여 유인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결국 민간 금융회사가 벤처기업 생태계와 동반자적 금융관계 형성에 앞장설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뒷받침이 필요한 것이다.

이효섭 실장은 “벤처기업이 보유한 우수한 무형자산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IP) 금융 인프라를 활성화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독립형 워런트를 발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국내 금융회사들이 고위험 벤처기업 지분과 벤처대출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세컨더리 시장과 고수익 회사채 시장의 활성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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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회 SRE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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